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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이 곳에 올 때마다 땅을 샀으면 하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1993년 이후 이 곳 설피밭을 신랑 따라 매년 한두 번씩 다니면서 신랑은 이 곳에 올 때마다 땅을 샀으면 하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내가 듣기 싫어서 “사고 싶으면 사면 되잖아!”하면 신랑은 “돈이 있어야지.”라고 말했고, 내가 다시 “방 빼서 사.”하고 퉁명스럽게 얘기하면 그 다음에 아무소리도 못했다. 그러던 중 신랑이 퇴직금 중간정산을 해서 집 평수를 조금 늘리려고 했는데 신랑은 진동리에 땅을 사고 싶다고 했다. 하고 싶어하는 일을 무조건 막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집은 전세끼고 대출 안고 구입만 해놓고 돈을 조금 남겨 진동리에 땅을 사기로 했다.

신랑이 사고 싶어했던 곳은 강선마을, 단목령 입구, 너른골 입구 등이었고 꽃님이네집 위치를 부러워했다.


그러던 중 2002년 초 길에 인접해서 별로 맘에는 안들어 했지만 부담없는 가격 때문에 냅다 저질러 버렸다.

신랑은 항상 언젠가는 내 집을 내 손으로 직접 지어봐야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인제 군청에서 농사 안 짓는다고 공문 날라오고, 마침 주5일 근무라는 호재가 생기면서 건축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집 짓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기딴에 조금은 색다르게 설계한답시고 방안지 사다가 이리저리 그려도 보고, 사람을 소개받아 주요 자재는 공급하고 얼마에 하기로 합의하고 시작하였다. 주말에는 신랑이 같이 노동일을 도와줘가며, 또 돈 잘 주면 일도 잘해 주겠지 생각했지만 돈을 받고나니 이 핑계 저 핑계대며 모르쇠하는 통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고, 많이 모지러진 것도 같다.


공사 마무리가 덜 된 상태로 다른 집 짓는 일을 시작한 무책임한 사람을 포기하고 문짝, 마루, 도배, 기타 잔손보기 등을 겨우내내 우리 부부 둘이 하면서 소나무와 흙벽돌로 된 집을 어설프게나마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다음 해는 백두대간보호 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건축이 어려워질 것 같다고 걱정하던 차에 현리 지나서 용포다리 부근에 흙집을 신랑이 발견하고 둘이서 찾아갔다. 주인 아저씨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신랑이 이런 일을 어디서 배우셨나? 혼자서 가능한가? 2~3년에 걸쳐서 해도 무방한가? 등의 질문을 했고, 아저씨는 당신은 돈 주고 배웠는데, 따로 돈 주고 배울 필요 전혀 없고, 가끔 막히는 것이 있으면 당신께서 코치해주면 충분하다 하시고, 혼자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주말에만 작업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몇 년에 걸쳐서 일하던 그 또한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신랑 용기 백 배 얻어 바로 개발행위허가를 받아 또 다른 집 짓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용포 아저씨의 말씀처럼 쉬운게 아니었다. 집에 갈 때 마다 매번 천막을 씌워놓고 갈 수 없다보니 비가 많이 내리면 벽체 일부가 빗물에 패이는 일이 많았다. 그밖에 명절 연휴 때 일 많이 해보겠다고 외국인 근로자 여러 명 데리고 가서 굳기 전에 무리하게 벽체를 올려 쌓다가 연휴 마지막 날 와르르 무너진 일, 10월 말까지 벽체 쌓았다가 건조되기 전에 겨울로 접어들면서 얼어붙어 겨우내 주말마다 연탄 난로와 화목 난로를 피우며 고군분투 했지만 결국 다음해 봄 포크레인으로 허물었던 일, 우리 신랑이 귀동냥해서 놓은 구들장을 미장하고 불을 피웠는데 연기가 바닥 뿐 아니고 벽체 크랙부위 전체에서 몽실몽실 피어올라 결국 뜯어냈던 일 등 겪은 시행착오가 너무 많았다. 그 때마다 “처음이니까”라고 자위하고 웃고 넘어갔지만 우리 신랑은 속이 엄청 타들어 갔을 것이다.


처음 집 짓기 시작한 지 벌써 만 칠 년이 지나 팔 년 째인데 살림집으로 사용할 안채를 제외하고는 사용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고 안채는 올 한 해 열심히 하면 얼추 마무리될 것 같고 창고, 공방 등은 내 후년까지 해야 제대로 정리가 될 것 같다.

남편도 지쳤는지 안채를 얼추 마무리 하고나서 미진한 부분은 조금씩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겠다고 한다. 집 지으면서 같이 흙집 짓는 용포 아저씨네, 개인약수 민산너와집 언니네, 가산동 경희네, 인제관광농원 아저씨네, 광주동 대대장 아저씨 등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1년에 서너번 모임의 기회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진동리 주민들께서도 격려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것이 이렇게까지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서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남편은 일 년에 한 두번을 제외하고는 매 주말마다 와서 노동을 하여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고, 이렇게 이루기까지의 노고에 정말로 감사하다. 우리 애들 한테는 성장하면서 이런 아빠의 모습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다. 그 동안 남편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찾아와서 직접 흙도 같이 쌓아 주고, 서까래도 올려 주고, 너와도 올려 주며 격려해준 것이 지금까지 신랑이 꿋꿋하게 일할 수 있었던 커다란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우리집에 오셔서 큰 보탬을 주신 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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